김근태 형님 만나 정담 나누시고故 이을호

김근태 형님 만나 정담 나누시고

1월27일 저녁 이을호 형의 안타까운 삶과 죽음을 기억하는 선·후배, 동료들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모여 조촐한 추모식을 열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제대로 격식을 차리진 못했지만, 최선의 예의를 갖춰 깊은 애도의 아프고 아쉬운 마음을 담아 형을 추억하고 송별했다. 이튿날 아침 발인식에선 나도 술 한 잔 올려 정중히 배웅했다.

동학의 발원지 고부에서 태어난 을호형은 전주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재학 시절 ‘최고의 천재’로 널리 이름을 알렸으나, 대학 졸업 직전인 1977년 말 유신철폐 시위 미수사건으로 제명됐다. 이어 1985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의장 김근태)이 이른바 ‘민족민주혁명론’(NDR) 등을 제기한 것과 관련해 김근태 의장(전 국회의원, 2015년 작고)과 함께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그리고 그 후유증으로 평생 병원을 오가며 정신과 치료를 받는 등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등 여러 학습모임에서 동료들과 토론하며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명쾌하게 진단하며 미래를 걱정하였고, 2019년 3월부터는 우석대학교에서 김근태연구소 부소장(객원연구위원)을 맡아 의욕적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2장

형수 말로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극도로 몸조심하였다는데, 2021년 말 결국 경희의료원 중환자실에서 확진 판정을 받고 무려 6주일간 버티며 투병하다가 숨을 거두었다. 정말 애통하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형님, 이제 하늘나라에서 늘 그리던 어머님 재회하시고, 김근태 형님 김병곤 형님 이범영 형님 김선택 형님 등 만나 회포 풀며 정담도 나누시고, 그렇게 몸도 마음도 편안하게 쉬십시오.”

-이을호 형님 그리는 후배 윤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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