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탐사기획팀
2030 청년 산재 기획
“어느 날 아들이 갑자기 눈을 떴는데 까마귀 눈이 된 거예요. 엄마도 아빠도 못 알아보고 눈만 깜빡깜빡”
어머니는 스물세살에 일터에 나갔다가 일산화탄소에 중독돼 8년째 ‘예’와 ‘아니오’ 밖에 하지 못하는 아들을 보면 매일 억장이 무너진다. “괜히 회사를 보냈다”고 후회를 한다. 산업재해의 고통은 살아있는 이들에게도 가혹했다.
죽은 자와 산 자 사이, 그 경계선에서 죽을 때까지 고통받는 삶이 있다. 치명적인 산재로 장애나 질병을 얻어 노동력을 100% 상실한 중장해인(장해 1∼3급)이다. 그 숫자는 1만1533명(2022년 4월 기준)에 이른다.
중장해인 중 20~30대 청년은 187명(2022년 4월 기준)이다. 83.5살인 한국 평균 기대수명(2020년 기준)에 비춰보면 이들이 살아갈 날은 50~60년 이상 남았다.
이들 중 상당수는 김용균씨처럼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무리하게 일하다 원청 또는 회사의 부주의로 재해를 당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여전히 말할 수 있는 그들의 목소리에 좀처럼 귀 기울이지 않았다.
산재 노동자의 목소리는 오랫동안 가려졌다.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세상을 떠난 스물네살 김용균. 2021년 4월 경기 평택항에서 300㎏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목숨을 잃은 스물세살 이선호. 같은 해 10월 여수시 요트선착장에서 배에 붙은 따개비를 따다 바다로 가라앉은 뒤 돌아오지 못한 열일곱살 홍정운.
청년 노동자의 죽음이 ‘뉴스’가 되기 시작한 것조차 오래지 않은 일이다. ‘살아남은 김용균들’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는 더욱 많지 않았다.
<한겨레>는 살아남은 김용균 4명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한다.
*자료 출처: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근로복지공단
산재 장해등급은 부상과 질병 정도에 따라 1~14급까지 나누어집니다. 이중 1~3급은 노동력을 100% 상실한 중장해인으로 분류됩니다.
1급의 경우는 두 눈 실명, 말하는 기능과 씹는 기능 완전 상실, 신경계통 및 정신기능에 뚜렷한 장해로 항상 간병을 받아야 하는 사람, 두 팔이나 두 다리를 완전히 사용하지 못하게 된 사람 등이 해당합니다. 3급은 한쪽 눈이 실명되고 다른 쪽눈의 시력이 0.06 이하인 경우나 두 손의 손가락을 모두 잃은 경우 등 상태일 경우 부여받습니다. 가장 낮은 14급의 경우에는 3개 이상 치아에 치과 보철을 하거나 두 팔이나 다리에 흉터가 남는 경우입니다.
산재가 발생하면 노동자는 우선 요양(치료)를 받습니다. 요양이 끝나거나 6개월 이내에 증상이 고정될 것으로 예상될 때 근로복지공단은 의학적 자문을 받아 장해등급을 결정합니다. 산재 노동자들은 이렇게 결정된 등급에 따라 장해보상금(연금·일시금)을 받습니다. 1~3급의 경우 연금으로만 지급하며 4~7급은 연금 및 일시금 중 선택할 수 있습니다. 8~14급은 일시금으로만 보상합니다. 연금은 치유(요양 종결)된 다음 날부터 사망한 달까지 수령할 수 있습니다.
2022년 4월 기준으로 20~30대인 청년 중장해인은 187명입니다.
10~30대에 산재를 당했지만 현재 나이가 40살을 넘은 경우는 제외한 숫자입니다. 이들이 산재를 당한 평균 연령은 24.3살이었고 현재 평균 연령은 34.6살입니다.
가장 어린 나이 때 산재를 당한 사례는 15살 때 오토바이로 배달일을 하다가 중앙선을 침범한 맞은편 차량과 충돌해 장기 등 손상(내부기관상해·뇌심혈관 질환 포함)으로 1급 판정을 받은 경우입니다.
16살에 산재를 당한 경우도 9건이 확인됐습니다.
교통사고, 감전, 추락 등 사고 원인은 다양했습니다.
187명 중 104명은 골절, 36명은 내부기관상해(뇌·심혈관질환포함)를 입었습니다.
직종은 단순 노무종사자가 75명으로 전체의 40%가 넘습니다.
보상금이 적어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실제 1급 중장해인이 받는 평균 연금은 월 401만원인데 비해 같은 급수의 20·30 중장해인이 받는 평균 연금은 250만원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20·30 중장해인의 연금이 적은 이유는 저임금인 청년 노동자들이 주로 산재를 당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장해보상금 규모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등급별 보상일수와 평균임금(3개월 평균 일당)입니다. 급별 보상일수는 1급은 329일, 2급은 291일, 3급은 257일입니다. 장해 1급이면서 직전 3개월 평균 일당이 10만원이었던 노동자라면 1년에 3290만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평균임금은 최고·최저보상기준금액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2021년 1월~2022년 12월까지 적용되는 최고보상기준금액은 22만6191원, 최저보상기준금액은 6만9760원입니다.
이처럼 직전 평균 일당이 장해보상금 산정에 큰 영향을 주는데, 청년 노동자들이 일반적으로 임금이 적고, 저임금 사업장에서 일하는 청년 노동자가 산재를 당하는 경우가 많아 적은 연금을 받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주로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고를 당하는 것 역시 청년 중장해인의 특징입니다. 이들이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고를 당한 비율은 41.2%로 전체 평균 23.2%에 견줘 두 배 가까이 높습니다.
청년들 사이에서도 사업장 규모에 따른 연금 격차가 드러납니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한 이들의 평균 장해연금 수급액은 203만원이었습니다. 반면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다 다친 청년중장해인의 장해연금은 309만원으로 5인 미만 사업장에서 근무했던 이들보다 1백만원 이상 많았습니다.
산재 유형 대부분 골절인 것도 눈에 띕니다. 청년중장해인 187명 중 골절은 104명으로 55.6%에 이릅니다. 골절·절단·파열·열상을 합치면 20·30 비율은 63.6%이지만 전체 평균은 23.5% 수준입니다. 공사 등 현장에서 부상을 입거나 교통사고로 다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모든 사업장에 적용됩니다. 다만 몇 가지 예외가 있습니다. 공무원이나 군인, 선원, 사립학교 교직원 등 별도의 재해보상 시스템이 있는 직업군은 산재보험법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또한 주택건설업자 등이 아닌 자가 시공하는 특정 공사, 가구 내 고용, 상시노동자가 1명 미만인 사업, 농업·임업(벌목업은 제외)·어업 및 수렵업 중 법인이 아닌 자의 사업으로 상시노동자 수가 5명 미만인 경우에도 산재보험법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플랫폼노동자들 역시 산재보험을 제대로 적용받지 못해왔습니다. 전속성 요건 때문입니다. 두 곳 이상의 사업장에서 일하는 경우 한 사업장에서 월 소득 115만원 이상을 벌거나 93시간 이상 일을 해야 산재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는데, 배달플랫폼 노동자 등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여러 사업주에게 노무를 제공하기 때문에 전속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2022년 5월29일 전속성 요건을 폐지한 산재보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적용 제외 대상이 상당히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이번 개정안은 2023년 7월부터 시행됩니다.
개정안에서 산재보험이 적용되는 특수고용노동자의 직종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기 때문에 이후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사각지대가 생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간병인이나 가사노동자처럼 사업주가 아닌 개인에게 고용되어 일하는 경우에는 산재 적용을 받기 어려운 문제가 남아있습니다.
민주노총은 이번 개정안에 대해 환영하면서도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는 일용직이건, 단기고용이건 직종의 제한 없이 (산재보험을) 적용하면서, 특수고용 플랫폼노동자만 적용 직종을 별도로 규정하는 것은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에 대한 차별”이며 “간병 노동자와 같이 직업소개소를 통해 병원의 환자에게 간병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도 적용받기 어렵게 되었다”는 한계를 지적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씨는 21살에 군대를 제대한 뒤 전남 광양에 있는 한 제철소의 협력사에 취직했습니다. 제철소 내 여러 기계 정비를 지원하는 업체였습니다.
복학할 수도 있었지만, 사회 경험도 하고 돈도 벌어볼 생각으로 취업을 택했다고 합니다. 제철소는 동네를 먹여 살리는 사실상 유일한 기업이었고 협력사였지만 일찍부터 일하면 월급도 점차 높아질 거란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2년 가까이 근무를 하며 일이 손에 익을 무렵인 2014년 6월6일 오전 9시50분께 그는 고로에서 발생하는 가스를 배출하는 밸브의 볼팅(볼트를 조이는 작업)을 하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씨의 사고경위를 살펴본 한 제철소 관계자는 “밸브 룸(밸브가 있는 공간)은 밀폐돼 있다. 가스가 새고 있는 것을 몰라서 중독된 건데, 가스 감지기를 달고 다니는 조치가 지켜지지 않은 것 같다”고 사고를 분석했습니다.
당시 이씨는 23살이었습니다.
이씨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간 어머니는 절망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기 하얗게 된 거 보이시죠. 마음을 준비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의사는 어머니에게 아들의 뇌 자기공명영상(MRI)을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아들의 뇌가 산소를 공급받지 못해 하얗게 표시가 됐고 목숨마저 위태롭다는 소견이 나온 것입니다. 살더라도 향후 인지 능력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심한 후유장해가 지속될 것이란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8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이씨의 사회적 연령은 1.92살입니다.
2020년 그의 심리 결과 보고서에는 “(피검자는) 산책을 하는 것 외에 딱히 즐기는 활동이 없으며 수면도 일정하지 않아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낮에 잠깐씩 잠을 자는 정도다. 사고 이후에는 감정이나 충동 조절문제도 매우 심각해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는 행동을 해 (…) 가장 큰 문제는 피검자가 어떤 부분에서 기분이 나빴는지를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다”고 적혀 있습니다. 또 “전문의에 의하면 ‘뇌의 반이 없는 상태’라고 할 정도여서 기능이 퇴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소견”이라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7년 3월 진행된 장해등급심사에서 이씨는 3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2년 뒤 실시한 재판정에서도 등급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장해연금은 매달 200여만원씩 남짓 들어옵니다. 장해연금의 산정 기준인 3개월간 임금의 평균을 반영한 결과입니다. 21살의 나이에 신입직원으로 입사했던 희성씨는 1년9개월 정도밖에 일하지 않았기에 임금이 많지 않았습니다.
해가 바뀔 때마다 물가상승분을 고려해 장해연금이 월 1만원 정도 오를 뿐입니다.
“말을 하게 해줘야 하고 1, 2, 3은 가르쳐주게 하는 게 부모의 마음 아니어요? 사람들이 현장에서 다쳤다고 하면 다 (근로복지공단에서) 대주는 줄 아는데, 안 되는 것들이 제법 많더라고.”
이씨의 어머니는 아들이 다시 말이라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언어 치료와 인지 치료를 받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한 시간에 5만원인 언어 치료는 비급여 항목이라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아직까진 젊지만, 언제까지 아들을 계속 돌볼 수 있을 지도 걱정입니다.
어머니는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던 중 “아직은 제가 젊어요. 아직은 괜찮은데….”라며 더는 말을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지난 10년(2012~2022년 3월)동안 이씨처럼 ‘화학물질 누출접촉’으로 산재를 당한 사람은 3326명이며, 이중 145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료 출처: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살아남은 김용균들: 2022년 187명의 기록
케이티(KT) 서비스 직원인 하씨는 2019년 1월9일 통신선과 고압선, 변압기가 함께 걸린 전봇대에서 작업을 하다가 감전을 당해 양팔을 절단해야 했습니다.
사고가 난 날 하씨는 아침부터 “빨리 와달라”는 고객들의 독촉 전화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2011년부터 9년째 케이티의 자회사인 케이티 서비스남부 진주지사에서 인터넷 개통·수리 작업을 담당했던 그에게 안면이 있는 공장주는 “포크레인 작업을 하다 인터넷 선이 끊어졌으니 당장 와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처음에는 거절했습니다. 일정에 없는 작업이었고, 이미 출근과 동시에 10건이 넘는 사건을 배당받은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회사가 권고하는 하루 적정 작업량은 7건인데, 일하는 도중 접수되는 사건까지 맡다 보니 하루 처리 건수가 15건에서 많게는 20건이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더군다나 공장까지 가는 시간을 생각하면 당장 가서 처리하기 어려운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장주의 간곡한 부탁에 결국 현장으로 간 하씨는 그날 두 팔을 잃어야 했습니다.
산재를 당했을 때 하씨의 나이는 31살이었습니다.
장해등급 2급인 하씨는 혼자서는 씻지도, 속옷조차 제대로 입지 못합니다.
그는 “온 가족이 제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실수가 늘어날수록 스트레스가 쌓여 미칠 것 같았어요. 좌절당하기 싫어 가만히 있는 시간이 늘었고요. 제가 사는 곳이 17층인데 베란다에 서 뛰어내려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라고 말합니다.
하씨처럼 영구적인 신체 장애를 입은 중증 장해인들은 치료가 끝난 뒤에도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곤 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인 막내가 “친구들이 ‘너희 아빠는 왜 갈고리야?’라고 물어봤다”고 말할 때는 가슴이 아프다가도 온종일 아이들과 붙어있다가 보니 짜증은 늘어만 갔습니다.
첫째 아이는 누적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틱장애 진단을 받았다고 합니다. “정말 자괴감이 많이 들었어요. 가족과 행복하게 살려고 왔지만 오히려 제가 방해만 된다는 느낌을 받았고 다시 병원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라고 말하는 하씨는 더는 갈고리 모양 의수를 사람들 앞에 드러내지 않게 됐습니다.
하씨가 사고를 당한 곳은 고압선과 변압기가 있는 전봇대에 통신선이 함께 걸려있는 장소였습니다. 감전사고 가능성이 많은 곳인 셈입니다. 하씨는 감전 위험이 있으니 이 인근에 통신주를 별도로 만들어 달라고 회사에 이야기했지만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고 당시 활선경보기(안전거리 이내 위험 전압을 감지해 소리를 내는 장치)는 울리지 않았습니다. 하씨는 “나중에 (회사에서) 하는 말이 불량이었대요.”라며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과중한 업무량, 울리지 않은 활선경보기, 절연이 불가능한 목장갑…. 하씨의 산재는 회사의 고질적인 문제가 곪아 터진 결과물인 셈입니다.
케이티 서비스노동조합은 하씨가 일하던 케이티 서비스남부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고용노동부에 고발했습니다. 검찰은 회사와 김아무개 본부장이 “감전 위험이 있는 작업을 하는 근로자에게 절연용 보호구 제공 등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판단해 기소했고 지난 5월4일 1심에서 재판부는 김 본부장에게 징역 6월, 케이티 서비스남부에는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지난 10년(2012~2022년 3월)동안 하씨처럼 감전으로 산재를 당한 사람은 3593명이며, 이 중 231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료 출처: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살아남은 김용균들: 2022년 187명의 기록
향타(구조물 지지 등을 목적으로 땅에 말뚝을 박는 작업)를 전문으로 하는 하청업체인 ㅅ회사에 입사한 김씨는 2018년 7월3일 오전 7시께 다리 공사 현장에서 2톤 무게의 스크루에 깔려 크게 다쳤습니다.
사장은 비가 와서 작업 속도가 더디자 포크레인을 동원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포크레인 앞을 가로막고 있던 스크루를 항타기 크레인으로 들어 올렸는데, 이 과정에서 스크루가 떨어져 밑에 있던 철제 자재에 부딪힌 뒤 튕겨 나와 현장에 있던 김씨를 덮친 것입니다. 응급차와 헬기로 병원을 향하는 동안 김씨가 흘린 피만 16L였다고 합니다. 대퇴부를 심하게 다친 김씨는 하반신마비 판정을 받았습니다.
건설 현장에서는 위험한 일이 반복됐습니다. 26살에 친구 아버지 회사에서 항타일을 시작한 뒤 ㅅ회사로 옮겨 장비보조원으로 근무했습니다. 김씨는 ㅅ회사에서 일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손이 잘릴 뻔했다고 합니다. 포크레인이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있어 작업이 더디게 진행되자 김씨가 나서다 철제에 손이 찍혔습니다. 건설업종이 산재에 민감했고 일도 바빴던 김씨는 개인 보험 처리만 한 뒤 계속 출근을 했습니다. 부장은 일손이 부족할 때마다 김씨를 불렀습니다.
사고가 난 날도 김씨는 예정에 없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공사 규모가 10억원가량의 소규모 현장이었는데 2∼3일 만에 끝나야 했을 작업이 며칠 동안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항타기 크레인은 최대한 많은 현장에 투입돼야 효율적인데 한 현장에 묶여 있었던 것이죠. 다음 작업 일정을 잡아뒀던 사장과 부장은 급한 마음에 직접 찾아와 김씨에게 일을 해달라고 재촉했습니다.
사고 당시 김씨는 29살이었습니다.
김씨는 한 달 전쯤 다리에 화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샤워 도중에 양치를 하고 있었는데, 뜨거운 물이 다리를 적시는 것을 느끼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고도 한동안 화상을 입었는지도 몰랐습니다. 양말에 물기가 묻어 나오는 것이 이상해 자세히 살핀 뒤에야 뒤꿈치와 복사뼈 쪽에 화상을 입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김씨는 하반신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수술이 끝난 뒤 의사는 동생이 더는 걷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명치부터 감각이 없을 것이고 재활을 해서 그걸 이겨내야 한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워낙 큰 사고여서 살아만 있어 달라고 바랐던 누나는 그 상황을 비교적 일찍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명치 아래부터 감각이 없으니 장기 등도 운동량이 없어서 병에 걸리는 일이 잦다고 합니다.
휠체어에 적응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김씨와 누나는 재활 치료로 더 나아지길 바랐지만, 의사는 현상유지를 위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누나는 1년 전까지만 해도 병원에서 상담을 위해 의사를 만나러 가면, 눈이 마주칠 때부터 울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더 좋은 소식이 없을까 기대를 하고 들어가는데 결국에는 다 똑같은 말을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김씨를 돌보는 것은 누나입니다. 사고가 났을 때 누나는 이직을 한 지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동생을 돌보기 위해서 누나는 회사에 죄송하지만 더 다니기 어렵다는 말을 해야 했습니다. 누나는 그렇게 2년 동안 일을 쉬어야 했습니다.
힘에 부치는 상황도 여러 번 겪었습니다. 동생을 침대에서 휠체어로 이동시켜야 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누나는 그러다 김씨를 몇 번 떨어뜨리기도 했습니다. 누나는 식당을 갈 때면 지도 애플리케이션 등에서 제공하는 로드뷰를 먼저 보게 됐다고 합니다. 경사로가 있는 지 등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비가 와서 미끄러워진 경사로를 내려오다가 휠체어와 함께 넘어지기도 합니다.
누나는 산재 피해자 가족에 대한 상담이나 심리 치료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김씨는 “사고가 나는 현장은 누가 봐도 진짜 딱 사고가 날 것 같은 곳”이라며 “보통 안전관리자가 없는 경우”라고 말했습니다.
김씨가 사고를 당한 2018년에는 150억원 미만의 토목공사 현장에는 안전관리자를 두지 않아도 됐습니다. 그는 “안전관리자들이 있으면 규정 준수 여부를 살피지만, 없으면 하청업체는 무조건 빨리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고 가능성이 크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자신이 사고를 당했던 현장에 대해서는 “안전에 신경을 안 썼다. 아무것도 되어 있던 상태가 아니었다”라고 했습니다.
특히 건설업계의 경우에는 업체 규모가 작을수록 중대재해가 자주 발생합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1년 산업재해 현황을 보면 지난해 건설업에서 산재로 사망한 551명 중 42%인 231명이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고를 당했습니다.
김씨는 “소규모 업체일수록 산재 사고가 더 잦다. 안전보다 공기 단축 등을 더 신경쓰기 때문이다. 진짜 위험한 일이다. 자재 무게가 톤 단위라서 어디든 깔리면 거의 잘린다고 봐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10년(2012~2022년 3월)동안 김씨처럼 부딪힘으로 산재를 당한 사람은 7만2647이며, 이 중 926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료 출처: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살아남은 김용균들: 2022년 187명의 기록
공업사에서 일하던 정씨는 2013년 5월13일 밤에 사장의 연락을 받고 차량을 견인하기 위해 견인차를 몰고 가다 전봇대를 들이받아 전신마비가 되었습니다. 병원에 옮겨진 정씨는 목뼈가 부러진 상태였다고 합니다.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둔 정씨는 일찌감치 배달일에 뛰어들었다고 합니다. 음식 배달로 일당 6만원∼6만5000원을 받았는데, 그 돈으로 1년 만에 오토바이를 샀습니다.
19살 땐 피자집에서 매니저 역할을 하며 모은 돈으로 차도 샀습니다. 20대에는 사장이 됐습니다. 24살 때 인천 부평구에 배달대행업체를 차렸습니다. 오토바이 6대를 사고, 1~2대는 빌려 사업을 했습니다. 직원은 20명이나 됐고, 한 달에 600만~700만원을 벌었습니다. 하지만 사업에는 신경을 쓸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27살 때 후배에게 가게를 넘기고 공업사에서 견인차 운전을 시작했습니다. 공업사 차량을 운행하던 정씨는 경험을 쌓은 뒤 돈을 모아 견인차를 한 대 마련해볼까 하는 고민도 했습니다. 정씨가 처음 받은 월급은 230만원 수준이었지만, 자신의 차량을 가진 기사들은 월 400만원 남짓을 벌어갔습니다. 벌이가 나쁘지 않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28살 사고로 정씨는 미래를 꿈꾸 것이 막막하기만 합니다. “재밌었죠. 재밌게 살았는데…” 과거를 떠올리는 정씨의 표정은 착잡했습니다.
정씨는 현재 요양이 진행 중이라 장해연금 대상자는 아닙니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재 노동자의 요양이 끝나거나 6개월 이내에 증상이 고정될 것으로 예상될 때 의학적 자문을 받아 장해등급을 결정합니다.
정씨는 다칠 때부터 전신마비였기 때문에 간병인이 항상 필요한 상황입니다. 활달하고 친구도 많았던 그는 이제 오전·오후 병원 가는 일정을 빼고는 종일 침대에서 생활합니다. 그의 일상은 밥을 먹고, 침대에 눕고, 텔레비전을 보는 일의 반복이었습니다.
정씨는 “내 뜻대로 못하는 것이 너무 많아서 힘들어요.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가니까. 하나하나가 다 힘들죠”라고 말합니다. 사회 복귀에 대한 생각을 묻자 그는 “거의 뭐 99.9% 그냥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1%도 기대를 못 하고 있죠”라고 답했습니다.
정씨는 사고 전까지는 아버지와 동생과 함께 살았지만 거동이 어려워 통원이 쉽도록 병원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해 가족들 얼굴도 잘 못 보는 상황입니다.
정씨는 간병인의 돌봄을 받고 있습니다. 정씨는 산재 급수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로 장해보상금이 아닌 휴업급여를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씨가 받는 휴업급여는 250만원 가량이라고 합니다. 간병료는 별도로 170여 만원이 나옵니다. 하지만 실제 간병비는 270만~280만원 정도가 들기 때문에 휴업급여에서 100만원을 떼어 간병비에 보태야 하는 상황입니다.
150만원 남짓으로 비급여에 해당하는 의료 기기 구입이나 생활비를 써야 하는 상황입니다.
근로복지공단 자료를 분석해보면 20·30 중재해자 187명 중 73명(39%)이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습니다. 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고유형은 운송·배달. 치킨·피자 등 음식배달은 물론, 물건을 납품하러 가다 사고를 당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차량에 치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한 3급 중장해를 입은 배달 노동자의 경우 임금이 적어 장해연금이 78만원밖에 안 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지난 10년(2012~2022년 3월)동안 정씨처럼 사업장 외 교통사고로 산재를 당한 사람은 4만8194명이며, 이중 735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료 출처: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사업장
살아남은 김용균들: 2022년 187명의 기록
산업재해로 인한 심각성을 거대한 피라미드에 빗댄다면, 맨 꼭대기에는 사망자들이 있습니다. 그 꼭대기 아래로는 재해 정도에 따라 부상자들이 순서대로 자리 잡고 있을 것입니다. 부상자 중에서 어떤 이는 단순 타박상을 입어 간단한 치료 뒤 원직장으로 복귀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살아남은 김용균’들은 산재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 바로 아래에 놓인 사람들입니다. 산재로 영구적인 신체 장애를 입어 사회로 나갈 수 없지만, 가장 오랜 기간 살아남아야 하는 청년들입니다. 누군가 죽어야만 관심을 갖는 사회는 노동자의 죽음과 결별하지 못합니다.
<한겨레>는 죽지 않았기에 일터의 열악함과 부조리함을 직접 말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적어도 죽음 만큼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한겨레>가 만난 4명의 ‘살아남은 김용균’들은 서류상 치료가 끝났지만 3명은 가족에게, 1명은 간병인에게 돌봄을 받고 있었습니다.
산재 가족들은 보호자 역할을 하다 마음의 병을 얻습니다. 사단법인 ‘희망씨’가 2021년 11월 발간한 ‘산재 노동자 가족생활실태 및 경험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보면, “모든 산재환자 보호자들이 우울증은 100% 있어요. 저는 100% 있다고 장담해요. 개그 프로그램을 보다가도 갑자기 눈물이 날 때가 있어요.”(ㄱ씨) “되게 유했던 사람인데, (산재 뒤) 정말 자기중심적이 돼요. (…) 잘 견디다 저도 한계치에 다 달아서 어느 날 제가 애들이랑 다 사라지고 없을 수 있다고 했어요.”(ㄴ씨) 등 중장해인의 보호자가 겪는 심리적 어려움이 드러나 있습니다.
산재를 한 개인의 불행한 사고가 아니라 사회적 재난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간병을 맡은 가족에 대한 지원도 수월해질 수 있습니다.
박승호 교수(가톨릭대 사회복지학)는 “산재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사회적 위험이고 가족에게는 갑작스러운 재난”이라며 재난안전관리기본법에서 규정한 ‘재난’에 산재를 포함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자연재난(홍수 등)과 사회재난(화재·붕괴 등)으로 한정된 재난안전관리기본법상 재난 개념에 산재도 포함되면, ‘재난에 직면한 위기가족의 긴급지원’을 규정한 건강가정기본법이 산재 가족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게 박 교수의 설명입니다.